영주 소수서원 (榮州 紹修書院)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이 풍기 지방의 교화를 위해 이곳 출신으로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우(祠宇)를 세웠다가, 이듬해 1543년(중종 38) 사우(祠宇) 앞에 향교 건물을 옮겨다 재실을 마련하여 선비들의 배움터로 삼음으로써, 서원의 대체적인 골격이 이루어졌다. 서원의 시설을 정비한 주세붕은 주자(朱子)의 《백록동 학규(白鹿洞 學規)》를 채용해서 유생들에게 독서와 강학(講學)의 편의를 주었으며, 한양의 종갓집에서 안향의 영정을 옮겨와 봉안하고서 처음으로 이름을 '백운동 서당'(白雲洞 書堂)이라고 하였다. 이후 1545년(인종 원년)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補)의 영정도 함께 배향하면서 백운동 서원(白雲洞 書院)이라 ..